대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CC도, 캠퍼스의 낭만도, 교내 호수 앞에서의 백주대낮 음주도 아니다.
바로 학점!
일단 닥치고 학점부터 챙겨야 하는 것이다. 이쁘장한 신입생 아가씨는 매년 들어오고, 술은 날씨 따뜻해지고 마셔도 늦지 않다. 근데 요단강 건너버린 학점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아, 젠장! 늦잠만 안잤어도!
그런 고난스러운 봄학기 2주차의 중간에 가장 재밌는 일이 생겼다. 월요일로 수강신청이 끝났는데 어느 수업의 총인원이 20명이다.
20명.
학교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우리 학교에서 평가의 방법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넘어가는 기준이 20명 미만이다. 20명이 안되어야지 절대평가가 가능해지고 정해진 학점비율에서 자유로워진다. 전부 다 A+를 받을 수 있다....는 정년퇴임을 반년 앞둔 교수님에게나 기대할 수 있는 거고, 적어도 나보다 어린 4학년 학우들 때문에 A0가 B+로 밀려 내려가진 않을 수 있다. 아흑;
막연한 기대보다도 더욱 강렬했던 것은 교수님의 말이었다. 이미 관련업계에 종사하고 있고, 박사과정인 듯 하지만 중고등학교 선생님이 흔히 가지는 꼬장꼬장한 예의보다는 다른 것을 원하기에 수업 시작하면서부터 계속 누군가가 이 수업을 포기하기를 권했다. 자신도 19명이라서 절대평가로 성적을 매기는 경우와, 20명인 경우는 상당히 다를테니까.
게다가 연계전공(제2전공이나 부전공만 되는 것들?) 수업인지라 해당전공이 아님에도 유난히 교양같은 기분으로 듣는(자선) 학생이 많았다. 수업 주제가 영화에 관한 것이기도 하니까. 게다가 고학년 수업이라 나처럼
파릇파릇한 2학년도 있지만 대부분은 4학년이다.
교수님의 회유 아닌 회유를 들으면서 나야 20학점에서 1학점만 모자라도 균형이 꺠져서(하루에 수업 하나 들으려고 다섯 시간을 차를 타야한다.) 포강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누군가 나가줬으면 하는 생각은 머릿속에 가득했다.
나만 그랬을까?
가만히 기다리기엔 리스크가 은근히 크다. 20명을 가지고 상대평가를 한다는 것은 수업이 어렵고 쉽고를 떠나서 상당히 고행이다. 30명 혹은 그 이상보다 A0 이상을 받을 수 있는 그룹의 비율이 가장 최저로 떨어지며, B 그룹도 순탄치 않다. 가장 최악의 상황에서 벌이는 이전투구인 것이다. 게다가 별로 유명한 수업도, 전공도 아니라서 그렇게 수고를 들여 수업을 들여야하는지, 기회비용을 생각해본다면 흠... 좀 무섭다.
하지만 약간의 리스크를 감내하고 좁은 문을 지나오면 누군가 한명은 그 문을 열지 않는다. 알 수 없는 1명을 기다려야지만 얻을 수 있는 보상이다. 자신이 아닌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결과를 받고 나면 그 뒤로는 순풍에 돛단듯 훈훈하게 순항할 수 있다. 교수님 성격도 느긋하겠다. 적어도 B 그룹엔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잘 섞힌 교수님의 권고를 들으면서 마치 온라인 게임같은 생각이 들었다. 서로 의식은 하고 있지 않겠지만 속으로는 엄청난 심리전이 벌어졌을 거라고. 한편에서는 섀도우 복싱을 하고 있고, 다른 편에서는 수건을 던질 준비를 할지도 모른다. 포강기간은 아마도 2주후쯤?
그 기간이 되면 내 이익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캔맥주를 마시며 A매치를 보는 축구 팬처럼 매일매일 흥미진진하게 기다려볼 것이다. 그리고 골이 터지면 훌리건처럼 기뻐하겠지. 이 건 좀 빅 게임.